+61 7 3637 2000
 

탕갈루마의 역사

탕갈루마와 모턴 섬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호주 원주민(Aboriginal)의 시대부터 유럽 정착민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수많은 호주 역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모래 언덕과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 - 원주민 (Aboriginal) 이야기

모턴 섬 (Moreton Island)은 원래 원주민 말로 Moorgumpin, 즉 모래 언덕의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탕갈루마 (Tangalooma)는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이 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물고기, 듀공, 거북이 사냥 등 어업 중심의 생활을 했으며 고사리, 야생 열매, 야자수 열매 및 꿀과 함께 주로 어류 위주의 식생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연과 실수로 시작된 역사? - 유럽 이주민 시대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우연히 발견된 이곳을 스코틀랜드 백작의 이름을 따서 'Morton Bay'라 이름을 지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의 항해 일지를 잘못 옮겨 적는 과정에서 'Moreton Bay'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유럽인들의 이주는 이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1823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턴섬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1850년 남쪽의 다른 섬인 스트라드브로크 (Stradbroke) 섬으로 모두 쫓겨나게 되었고 그 섬에는 현재까지 그들의 자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적군을 막아라! - 세계 2차 대전
세계 2차 대전 당시 섬 내의 코완코완 (Cowan Cowan)과 툼파니 (Toompani)라는 두 곳에 전략 방어 기지가 세워졌으며 현재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남획에서 보호까지 - 고래 포경 기지

탕갈루마에는 1950 이후 포경기지가 세워졌으며 이는 남반구 근해에 위치한 기지로는 가장 큰 규모로 알려졌습니다. 

1952년 6월 섬의 북쪽 포인트인 케이프 모턴에서 시작된 포경업은 처음에는 두마리로 시작이 되었으나 4개월 후인 10월에는 약 600백여마리에 이르는 고래를 잡고 가공하는 등 가파른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래 한마리에서 나오는 8,000 킬로그램의 고래기름은 당시 가장 값비싼 원료로 마가린, 글리세린, 화장품 및 약품에 쓰이는 등 광범하게 사용이 되었으며 고래 고기는 식품으로 뼈와 고기 찌꺼기는 가축의 사료 및 비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1950년대 식물성 기름이 개발된 후 1959년 고래 기름은 급격하게 그 값이 떨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지나친 남획으로 인해 고래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 결과 결국 1962년에 포경기지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952년부터 10년동안 6,278마리의 고래가 잡히고 가공된 결과 약 15,000마리였던 호주 동부해안의 혹등고래의 수는 500마리도 채 남자 않게 되었고 이에 1965년에는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이 되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과거 연 3천 2백만불의 이득을 올린 호주의 포경 산업이 현재는 고래를 보호하고 관찰하는 관광상품으로 바뀌어 연 7천만불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호주의 혹등고래들은 현지 겨울인 6월부터 10월까지 따뜻한 바다로 번식을 위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 시즌에는 탕갈루마 고래관찰크루즈가 운영되어 여러분이 이 거대한 고래들을 자연 그대로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 - 현재
1963년 6월 예전에 쓰이던 고래 포경 기지는 골드코스트의 여러 사업가들이 모인 한 단체에 매입이 되었으며 1980년 브리즈번의 '오스본(Osborne)' 가(家)에 다시 매입이 되어 그 이후 현재까지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고 계속 노력, 발전하는 리조트가 되었습니다. 
 
스페셜 상품
고래 관찰 크루즈
돌고래 먹이주기
 
 
Privacy policy